토스 발행·유통 '이중 역할' 파괴적 혁신 vs 금융당국 견제: 원화 스테이블코인 주도권 전쟁과 화폐 3.0 시대 개막 분석
토스의 '화폐 3.0' 선언, 한국 금융 지형을 뒤흔들다
2026년 3월 12일, 서울 강남구 섬유센터에서 열린 '2026 블록체인 밋업 컨퍼런스'에서 토스(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의 서창훈 상무가 무대에 올라 한국 금융사에 기록될 만한 선언을 했습니다. **"토스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유통 사업 모두에 참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실물 화폐(1.0)와 전자 화폐(2.0)를 넘어 프로그래머블 머니와 스테이블코인이 주도하는 '화폐 3.0' 시대의 개막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입니다.
이 발표는 단순한 사업 확장 계획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3,000만 이용자를 보유한 한국 최대 핀테크 기업이 은행·증권·결제를 아우르는 금융 라이선스를 무기로, 기존 금융 질서의 근간인 화폐 발행과 유통 영역에 동시에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금융당국과 기존 은행권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2026년 한국 디지털 금융의 핵심 변수가 되었습니다.
규제의 갈림길: 디지털자산기본법과 '51% 룰' 논쟁
토스의 야심찬 선언이 나오기까지, 한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환경은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표류해왔습니다. 2025년 추진되었던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입법은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간의 이견으로 2026년으로 연기되었습니다.
논쟁의 핵심은 이른바 **'51% 룰'**입니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를 필두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컨소시엄에서 은행이 최소 50%+1주의 지분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 한은의 입장입니다. 통화정책 전달 경로 보호, 금융 안정성 유지, 자금세탁방지(AML) 체계 확보가 그 근거로 제시되었습니다. 반면 금융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은 이 규정이 핀테크 및 비은행 금융사의 진입장벽을 과도하게 높여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고 반박해왔습니다. 민주당 민병덕 의원은 51% 기준이 "정책적 필요가 아닌 규제 편의"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의 쟁점은 이자 지급 여부입니다. 한국은행은 이자를 지급하는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예금 대체재나 머니마켓펀드와 유사해져 통화정책 실효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반면 업계에서는 이자 지급을 금지하면 보유 인센티브가 줄어들어 결제 수단으로서의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2026년 1월 28일 더불어민주당 TF가 비공개 회의에서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최종안을 논의했으며, 2월 법안 발의와 3월 국회 통과를 목표로 했으나, 지정학적 긴장과 정치 일정으로 최종 확정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토스의 파괴적 전략: 발행과 유통의 동시 장악
토스의 전략이 기존 금융권에 충격을 주는 이유는 발행과 유통이라는 가치 사슬의 양 끝단을 동시에 장악하겠다는 구상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화폐 발행은 중앙은행과 은행의 고유 영역이었고, 유통은 카드사·PG사·핀테크의 영역이었습니다. 토스는 이 경계를 허물겠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토스는 빗썸(국내 2위 거래소)과 스테이블코인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지급결제 시스템 연계 방안을 협의 중입니다. 헤럴드경제에 따르면, 토스와 빗썸은 300억 원 규모의 스테이블코인 전용 펀드를 조성해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는 두나무(업비트 운영사)와 네이버의 연합, 카카오 금융 계열사 중심의 컨소시엄과 함께 3대 빅테크 진영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토스의 차별화 포인트는 오프라인 인프라에 있습니다. 현재 24만 대 이상의 토스플레이스 결제 단말기가 설치되어 있으며, 누적 거래액은 26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토스는 2026년까지 50만 대, 2027년까지 70만 대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스테이블코인 기반 실시간 정산이 이 단말기를 통해 오프라인까지 확장되면, 가맹점은 매출을 즉시 확인할 수 있고 소비자는 온·오프라인 구분 없이 동일한 결제 경험을 하게 됩니다. 현재 카드 결제 시 가맹점이 정산금을 받기까지 영업일 기준 2~3일이 소요되는 것과 비교하면 혁명적인 변화가 될 수 있습니다.
화폐 3.0과 프로그래머블 머니: AI가 돈을 움직이는 시대
토스가 제시한 화폐 3.0의 핵심은 다섯 가지 특성으로 요약됩니다. 범용성(Universal), 프로그래밍 가능성(Programmable), 검증 가능성(Verifiable), 조합 가능성(Composable), 경계 초월성(Seamless)입니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프로그래머블 머니와 AI의 결합입니다. 토스는 "돈 자체에 로직이 내장돼 사람이 일일이 판단하지 않아도 돈이 스스로 사고하고 움직이는 구조"를 제시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모든 토스 이용자가 마블 영화의 '자비스'와 같은 AI 비서를 보유하게 되어, 목표 가격 도달 시 자동 매수,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대출 상환 최적화는 물론 결제·송금·환전까지 AI가 자동화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토스는 이미 내부적으로 **'소상공인 디지털자산 공동대출 프로젝트'**를 통해 개념 증명(PoC)을 완료했습니다. 자체 신용평가 모델과 블록체인 기반 스마트 계약을 연동해 자동 금리 조정이 이루어지는 구조를 실험한 것입니다. 이는 화폐 3.0이 단순한 비전이 아닌, 실행 가능한 기술 기반 위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토스는 금융 기능을 블록 단위로 결합하는 조합형 금융 구조를 기반으로, 토스 앱 내에서 다양한 미니앱과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DApp)이 작동하는 개방형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청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이는 토스를 단순 금융 앱에서 **'보더리스 금융 슈퍼앱'**으로 진화시키겠다는 야심찬 구상입니다.
컨소시엄 전쟁: 은행권의 반격과 빅테크 합종연횡
토스의 도전에 기존 금융권도 손놓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금융은 BNK금융, iM금융, SC제일은행, OK저축은행, JB금융 등 6개 은행을 모은 컨소시엄을 구성하며 선점에 나서고 있습니다. 인베스트조선에 따르면, 하나금융 컨소시엄으로의 '쏠림 현상'이 관측되고 있습니다.
빅테크 진영에서는 두나무와 네이버의 연합이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두나무가 자체 블록체인 메인넷 '기와체인'과 지갑 인프라를 개발 중이며, 네이버의 국내 2위 온라인 커머스 플랫폼과 결합하면 스테이블코인 구매부터 활용까지 고객을 락인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사업체가 된다고 분석했습니다. 카카오 역시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 등 금융 계열사를 총동원한 컨소시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3월 초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 구성에서 기술 기업과 디지털자산 기업을 배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는 초기의 강경한 은행 중심 기조에서 다소 완화된 것으로, 빅테크 참여의 문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됩니다.
투자자와 업계 관계자를 위한 실무 가이드
현 시점에서 가상자산 투자자와 업계 관계자가 주시해야 할 핵심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입법 일정입니다. 당초 2026년 상반기 통과를 목표로 했으나, 6월 3일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 일정에 밀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법안 통과 시점에 따라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장 개막 시기가 결정됩니다.
둘째, 컨소시엄 구성 방식에 따른 시장 구조 변화입니다. 은행 51% 룰이 그대로 유지되면 토스와 같은 핀테크의 역할은 유통 사업자로 제한될 수 있습니다. 반면 이 기준이 완화되면 토스의 발행·유통 이중 역할 전략이 현실화됩니다. 금융위의 최근 태도 변화가 어느 방향으로 결론날지가 핵심입니다.
셋째, 과세 체계입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거래에 대한 과세 기준은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 '가상자산'으로 분류되면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이 될 수 있으나, '결제 수단'으로 인정되면 다른 세법 적용이 가능합니다. 국세청의 유권해석이 나올 때까지 거래 기록을 철저히 보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망: 한국 디지털 금융의 분기점
2026년은 한국 디지털 금융의 결정적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토스의 화폐 3.0 선언은 단순한 기업 전략을 넘어, 한국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경쟁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스테이블코인 입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글로벌 시가총액은 2,00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한국이 규제 논의에 시간을 소모하는 동안 글로벌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의 '한강플랫폼'이 스테이블코인 백업 체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구상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공존하는 이중 구조의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또한 한국은행과 FIU(금융정보분석원)는 스테이블코인 확산 시 개인 지갑도 AML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규제의 범위가 발행·유통을 넘어 개인 이용자까지 확대될 수 있음을 예고했습니다.
결제 인프라 측면에서도 변화가 예상됩니다. 아시아경제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발(發) 결제 지형 변화로 기존 카드사와 PG사의 수익 모델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으며, 9개 카드 발행사가 이미 컨소시엄 참여를 위한 30개 공동 상표를 출원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론
토스의 발행·유통 이중 역할 전략은 한국 금융 역사상 전례 없는 도전입니다. 3,000만 이용자 기반, 70만 대 오프라인 단말기 확대 계획, AI 프로그래머블 머니라는 기술 비전, 그리고 빗썸과의 전략적 제휴는 기존 은행 중심 금융 질서에 대한 강력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51% 룰 논쟁, 이자 지급 문제, 과세 체계 미비 등 규제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습니다. 투자자와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 동향, 컨소시엄 구성 확정, 그리고 금융당국의 최종 가이드라인 발표를 면밀히 추적해야 합니다. 화폐 3.0 시대의 서막은 올랐지만, 그 무대의 최종 모습은 올해 하반기에야 윤곽이 드러날 것입니다.